독재자의 위험한 매력1-무측천(則天大聖皇帝)
무측천은 우리나라에선 측천무후로 더 잘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선 통칭 무측천이라고 하죠.
아무리 그녀의 공식 시호가 '측천순성황후'였다 해도 측천무'后'로 칭하기엔 그녀는 분명 황제였고,
그녀가 세운 周나라는 20년간 실재했습니다.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을 양분해놓은 왕망의 新나라보다 무려 5년이나 길게 말이죠.(그러니까 전당이랑 후당도 구별하란 말이닷!)

전 중3때 무측천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전에도 물론 이름은 알았지만, 어렸을적의 보수적인 시각에 입각해 나라 말아먹은 요부,탕녀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어렸을땐 나름 꽤 보수적이었답니다. 박정희가 위인인줄 알았던 부끄러운 과거...;;;)
그 시각이 변한건 중3 연합고사가 끝나고 빌려본 20편짜리 시리즈 '측천무후'를 보고나서 부터였습니다.
으으음......어느 장면이었냐면......

좀 촌스러운 오프닝 음악이 나오면서 본방으로 화면 넘어가기 직전,
조당에서 신하들이 도열해 무릎을 꿇는 가운데 오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며 옥좌에 앉는 당당한 모습!
'아....멋있다+_+'란 생각과 함께 뻑가고 말았죠.



이 비슷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무측천에 대한 자료들을 탐색하던 가운데 원백대의 '측천무후'란 6권짜리 소설을 읽게 되었구요.
그때까지 권력을 위해 친자식까지 죽이기를 서슴지 않은 희대의 악녀로만 취급되던 무측천을 굉장히 새롭게 평가해놓은 책이었죠.
탁월한 정치감각과 식견을 가진 대정치가.
온갖 시련과 역경을 헤쳐나오면서도 꺾이지 않고 마침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몸으로 왕조를 창업하여 황제의 위치에 오른 사람.
갖가지 고정관념에 저항하며 정력적으로 혁신정책을 펴나갔던 사람.
이건 최근에 읽은 '무측천평전'과도 비슷합니다.

정치가로서의 무측천은 상당히 유능합니다. 천재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정권획득을 위한 목적의 수단이긴 했으나, 그녀는 중국역사상 최초로 민중을 동원한 정치개혁마저 불사합니다.
벌레처럼 밟히고만 살았던 백성들, 그들을 거의 민족의 대이동 수준으로 수도로 데려와
생생한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 한거죠.
거기에서 후대에까지 혹리로서 악명을 드날리며 무측천의 정권획득에 '독'으로서의 일익을 담당한
내준신, 색원례 등도 얻게 됩니다.
'밀고의 함'을 만들어 관리는 절대 하지 못하고, 백성들만이 밀고할 수 있게 하여 관리들을 통제하기도 하구요.
일단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천했단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합니다.
고리타분한 유교경전에 매달려 앞뒤도 못보는 관료들과 달리 참신하고 혁신적인 개혁안을 척척 내놓으며 실행시켜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측천에 대한 비판은 참으로 다종다양합니다.
물론 후세의 남성 역사가들이 뒤집어씌워놓은 누명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1. 권력을 차지하기위해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아무리 간교한 수단이네, 태후의 지위로 날로먹은거네라고 비난하고 싶어도,
왕조 자체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이름의 왕조를 개창한다는건 절대 쉬운일이 아닙니다.
무측천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무혈로 이루어냈구요.
뭐....그 와중에 당조의 황족이나 귀족들은 많이 제거됐지만, 그건 귀족들의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유혈사태일뿐,
백성들관 별반 상관이 없는거죠.
삼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 수당교체기 시대 등등의 전란으로 왕조가 교체되던 시기의 유혈사태에 비하겠습니까.

황후가 되려고 무소의이던 시절 당시의 황후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갓 태어난 딸도 죽이고,
태자 홍, 그 뒤를 이어 태자가 된 현등 친자식을 죽이고,
뒤의 두 아들(중종,예종)은 폐위시키고 등등...
물론 잘했단 건 아니죠.
하지만 여아살해 부분은 날조란 설이 증거가 더 충분하며 설득력이 있고,
태자 홍 또한 몸이 약했단 기록이 많습니다.
태자 현은 이미 먼저 반란을 일으킨 상태...당연히 처벌받아야 했고,
중종폐위는 그가 복위한 후 지 마누라 위씨와 벌인 삽질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며,
예종폐위는 당연한 수순...

만일 친자식 죽인게 사실이라 쳐도, 형제 둘이나 쳐죽이고 그 마누라까지 뺏어가진 당태종 이세민만 하겠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의 영조만 보더라도 지가 음모에 빠졌든 어쨌든 친자식을
그냥 우아하게 사약 내리는 것도 아닌, 삼복더위에 뒤주에 쳐넣어 죽여버리기도 했죠.


2. 음탕한 탕녀이다.

제가 절대적으로 혐오하는 논리입니다.
차라리 무측천의 정치적 행위라든가 악랄한 성품이라든가를 욕하면 그래도 괜찮겠어요.
'영웅은 호색'이라며 남자는 많은 여성들과 즐길수록 풍류적이 되는 거고,
여자는 남첩 한두명 있으면 바로 탕녀가 되는겁니까?
하긴 남자의 정조는 전장의 깃발이요(찢길수록 영광), 여자의 정조는 쪽박(깨지면 쓸모없음)이라고 누가 그랬습니다만..-_-++
물론 설회의나 말년의 장창종, 장역지 등의 남첩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결코 그들에게 빠져 국정을 말아먹을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일정 범위를 넘어선 권한을 주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국고를 들어먹을 정도로 낭비를 시킨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그저 육신과 마음의 위안 정도란 말이죠.
그럼 남편인 고종은 옛날에 죽었는데, 혼자 죽을때까지 수절하란 말인가요?
전 그래서 무측천의 남자관계로 비난하는 글을 읽으면 그사람이 쓴 글 전체의 의도마저 심각하게 의심합니다.
개념 자체가 없는거죠.


3. 사치스럽고 낭비가 심하다.

물론 무측천은 제가 좋아하는 또다른 독재자인 옹정제에 비해 많이 사치스러웠던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를 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당현종처럼 고작 과일 하나 가져오자고 공적인 일에 써야할 파발을 저 머나먼 남방에서부터 장안까지 조낸 달리게 하지도 않았고,
서태후처럼 나라는 빈사직전에 있는데 지 하나 즐겁자고 초호화스런 이화원 따위나 짓고 앉아있진 않았단 말이죠.
그때까지, 그리고 무측천의 재위시에 재정은 건실했고, 세상은 평화로웠으며,
당나라의 문화는 그때를 기점으로 화려하게 피어나니 말입니다.
만일 당태종에서 무측천으로 이어지는 치세가 없었다면 당현종 치세의 성당문화 또한 그렇게 꽃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옹정제처럼 검소했으면 더 나았을거란 생각도 해보지만 전 당나라의 화려찬란한 문화도 꽤나 좋아하기 때문에...;;


한 10년 정도 된거 같군요. 무측천이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게.
무측천은 독재자입니다. 아주 탁월한 독재자입니다.
그녀 개인의 매력이 대단했으며, 불교의 미륵신앙과 신비주의를 결합시켜 자신을 정광천녀의 현신으로
백성들을 숭배시킬 만큼 카리스마도 뛰어났죠.
황후시대부터 따지면 50년에 걸쳐 권력의 최정점에 있으면서도 말년에 통치력의 부침이 심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의 군주로선 최선이라 할만큼 백성들에 대한 정책에 힘을 기울였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참신한 사상으로 정체되어있던 조정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의 행위가 모두 정당했다고 볼순 없으며, 과오 또한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몇백년간 이어진 부당한 평가 따위는 이젠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그녀의 성별이 아닌 그 사람의 업적을 말이죠.

어쨌든 정치가로서나 개인으로서나 매력적이고 끌리는 인물인건 사실입니다.
(전 독재정치가라도 그 숙청의 칼날을 같이 진창에서 권력을 다투는 정적들에게나 겨누지,
일반 시민들에게 칼날 들이대는 놈들이 아니라면 그런대로 업적을 봐서 좋아해줍니다^^;;)
by 태리 | 2006/02/11 20:45 | 愛(사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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